Saturday, June 19, 2004

대가를 치른다는 것...

식민지와 분단과 전쟁과 굶주림, 그 속에서도 과연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앞서간다는 선진국은 한층 더하다. 그들은 침략과 약탈과 파괴와 살인을 한 대가로 얻은 풍요를 누리는 천사처럼 보이는 악마일 따름이다.
우리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선진과 후진이 없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분단도 하루속히 무너뜨려야 한다. 경제적 후진만으로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다.기름진 고깃국을 먹은 뱃속과 보리밥 먹은 뱃속의 차이로 인간의 위아래가 구분되어지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다. 약탈과 살인으로 살찐 육체보다 성실하게 거둔 곡식으로 깨끗하게 살아가는 정신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의 길이 아닐까. (pp12-13, 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2004)
오늘은 휴무일이지만 일이 조금 밀렸고, 평소에도 게을른 탓에 사무실을 나왔다. 오후 1시가 되어서 점심시간 지나서 식당에 가면서 사 두었던 책을 하나 꺼내어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귀절을 옮겼다. 딱히 선진국이 아니라도 우리는 평소에 약탈과 살인을 하거나 당하거나 한다. 알게 모르게. 자신과 상대방에게. 이를 대가를 치르었다고, 치른다고 이야기하나. 늘 좋은 마음과 낯으로 사람을 대하고, 또 같이 협력해서 일하는 경우가 있었던가.

아래의 글도 마음에 와 닿았다.
이와 같이 기독교가 있기 때문에 하느님이 있고, 교회에 가서 울부짖는다고 하느님이 역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기독교가 있든 없든, 교회가 있든 없든, 하느님은 헤일 수 없는 아득한 세월 동안 우주를 다스려왔다. 선교사가 하느님을 전파하면 하느님이 거기 따라다니며 머물고 같이 사는게 아니라,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부터 하느님은 어디서나 온세계 만물을 보살펴오셨다. 하느님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인간들의 마음이다. 종교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려는 의지이지, 종교가 요구하는대로 하느님의 섭리를 바꾸는 게 아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바로 자연의 섭리가 된다. 하느님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 했다. 그러니 하느님은 곧 자연인 것이다. (p19, 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2004)

비가 또 내리는 토요일이다. 책상위가 끈적하다.
마음도 습기에 젖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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