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19, 2005

[지저깨비 2집] 도시야곡

책을 한 꾸러미 옆에 끼고 행길로 나선다. 오늘 저녁도 누군가를 만나서 책을 전해 주어야지. 하루 낮을 집에서 보내다 저녁이 지나 밤이 다 되어서 나서는 것은 어둠에 젖어드는 퇴근시간대의 휘청거리는 러시아워의 흐름에 나도 젖고 싶어서.

무심하게 거리를 걸으며 지나치는 온갖 것에 눈길을 마주친다.
미친놈같이 지랄 거리는 네온사인, 영업시간이 지나 내려진 은행의 강철문, 화사스러운 술집이름, 그 옆에 뱉어 버려진 배설물같은 쓰레기, 헤픈 화장기의 아가씨들이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에 요사스럽다. 아가리가 커 많은 사람을 잡아먹고 뱉어내는 지하도, 지하도안의 후터분한 공기, 야박스러운 상꾼, 깨져버린 내 안경알 같은 가로등 전구, 도시 속에서 헤매는 바람.
번화한 거리를 걷는 무심한 내 표정만큼 내 머릿속은 온전하지만은 않다. 사람 사이를 어깨가 걸리지 않도록 피해 걷는 서커스를 한다.

다방에 앉아 연방 담배를 끌어다 피워대며, 너 잘났다 내가 잘났냐하며 나불거린다. 소주 한잔 마시며 자리를 바꾼다. 석 잔술에 취기가 돌면 기분이 좋아서 마구 떠든다. 마구 떠든다. 웅웅거리는 도시의 움직이는 소리가 청각을 마비시키고, 어두침침한 도시의 불빛이, 술집의 내부 등이 시야를 차단하며, 석 잔술이 벙어리의 입을 여는 기적을 이룬다. 그 술기운이 내 입에서 배설욕을 충동질하여 몇몇 사람이 그 바람에 멱살을 잡힌다.

그리고..., 털털거리며 친구와 헤어져서 걷는 종로거리는 쓸쓸하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상하다. 조금 개운함이 술이 만만한 듯 기분이 좋아진다. 어둠에 젖은 술에 취한 종로거리에 나도 젖는다. 주머니를 뒤지다 동전2개를 꺼내 전화부스안에 들어가 다이얼을 돌린다. 그리고 하루가 끝났다.

남은 책 한 권은 내 한 손에 들고 털털 걸어간다.

(198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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