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24, 2008

일을 처음 배웠을 때

Question Shop: "There are so many questions and so little time to find answers for them. Before there was Google and other search engines, people relied on friends, family or books to solve their mysteries."

엔지니어링도 그러했다. 기술 전수는 선배들의 구전으로 전해졌으며, 얻기 어려운 자료들은 죄다 영어에다, 복사본이었다.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습식 복사라고 해서 암모니아로 구운 청사진 A4 용지에, 단어마다 한글로 적어놓은 사본을 빌려서 읽고는 했다.

그래도 그때는 배우고자, 알고자 하는 기운이 충만했던 그런 시기였다.

모든 것을 손으로 다 했다. 도면도, 문서도. 문서를 만들려면 타자실에 가서 번호표는 없지만, 손으로 작성한 문서 초안을 주고 대기를 해야 했다. 타자실의 아가씨와, 복사실 사람과, 교환실의 누나들과 잘 사궈서 일을 빨리 처리해야 일을 그나마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서울 시내에서의 문서 전달은 직접 가서 전달했다. 통신과 택배가 발달하여 책상에서 책상으로 전달하는 요즘은 다르지만. 그러면서 시내 지리도 알고,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고, 그러면서 일을 하나씩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외국의 엔지니어링사가 얼마나 사기를 치고 우리에게 기술료를 챙겨갔는지는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때는 그러면서 배워야 했다.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경험은 돈으로 사는 것이다.

지금도 기술적으로 난감한 문제들은 지인들에게 전화하면서 알게 되고, 풀어가는 방법을 찾게 된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검색엔진이 발달해도, 감성이 개입된 모든 문제 (기술적인 일이라도 사람의 감성 인입이 없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의 직접적인 해답은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지금도 새로운 프로젝트의 입찰안내서 Invitation To Bidder, 계약서 Contract에 붙은 스펙 Specification을 읽으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는 기술을 알게 된다. 경험은 일을 통해서 쌓인다.

6 comments:

  1. 서울 시내에서의 문서 전달은 직접 가서 전달했다. <<- 여기서 세월이 많이 변했음을 느낍니다. 보는 즉시 놀라고 1초후 생각해보니 그 시대엔 그랬네요. 왜냐면 제가 어렸을때 한 네다섯살때쯤, 아빠가 하는 이야기 가끔 들어보면 회사에 미스김이나 미스리 같은 경리 아가씨를 시켜서 은행도 보내고 서류 같은거 다른 회사에 보내는 심부름도 시키고 그래서 회사에 그런 어린 아가씨 직원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경리과 직원 말고는 그런 잔심부름을 위한 직원은 없죠. (참고로 무역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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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
    제 신입사원 시절. 입사하자 마자 저를 꼭집어서는 컴퓨터를 배우라 하더군요. 넓은 사무실 한 가운데 컴퓨터라고 한 대가 있는데 아무도 사용을 안 하는 상태로 커버가 씌워져 있더군요.

    어떻게 배우면 되냐고 하자 한 달 시간을 줄테니 전산실에 눌러 붙어앉아서 눈치껏 배우라더군요. 한 달 후 직접 만든 프로그램으로 시연을 하자 다들 놀라 자빠지더군요. 지금 기억에 그 프로그램은 엑셀 사칙연산하는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90년 1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2.
    그때 사무실에는 저보다 나이가 두어살 많은 올드미스 송이라는 분이 있더랬죠. 최고 인기 있는 타자수였답니다. 끗발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시죠?

    하지만 저는 군대에서 타자를 독수리 타법으로 배운지라 아쉬울 게 없었죠. 속도가 늦은 대신 오타는 더 적었답니다.

    연상의 미스 송 누님은 절 싫어하기 시작하더군요. ^^

    3.
    지저깨비님 말씀처럼 저도 선배가 덕지덕지한 복사판 배관 매뉴얼을 물려 주더군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현장의 알짜배기가 다 들어 있어서 성경책 마냥 우러러 보며 숭배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4.
    요즘은 통신이 너무 발달하여 스팸까지 나오는 세상이 됐지만 제 신입사원 시절에는 모든 게 귀해서 회의자료라고 특별히 만들지 않고 입으로 때웠던 것 같습니다. 문서화 하는 것은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였던 것 같네요.

    제가 자주 찾는 블로그의 그 분 글이 생각이 납니다.

    "전기불이 없었을 때는 전기만 들어오면 세상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막상 전기가 들어 오자 더 바쁘고 여유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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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UltraMint] 요즘은 사람이 왔다갔다 할 시간이 없답니다. 택배를 이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은 수의 인원으로 사무실을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임금도 비싸지만, 왔다갔다 할 시간에 일을 더 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기 때문이죠.

    사람 채용도 쉽지 않아요. 젊은 친구들 중소기업이면 잘 오지도 않고, 이직률도 높아요. 점심먹고 나가서 안 돌아 오는 친구도 있더라구요.

    제 아이들을 봐도 조금 걱정이 되더라구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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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나무]
    1.
    80년 말인가 회사에서 컴퓨터를 몇 대 샀는데, 이에 대해서 관심이 있던 부서장이 컴퓨터를 한대 신청을 해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했고, 외국 워드프로세서를 한글화한, 지금 생각하면 정말 쓰기 복잡했던 프로그램을 열심히 익혔던 기억이 있답니다.
    부서장님은 사장님이 뒤에 오시는 지도 모르고 게임하다가 들켰던 일도 있었죠. 단색 모니터에서 하던 경마게임 이었는데 말입니다. ^^

    그리고, 캐드를 아마 국내에선 처음으로 도입했는데, 부채같은 8인치 디스켙을 가지고 다니면서 재미있게 배웠답니다. 그 때는 도스 명령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C:드라이브 루트에서 del *.*를 했다가 홀랑 다 지웠던 적이 있답니다.

    지금도 여천 각 공장에 있는 오래된 도면을 보면 제가 그 때 그렸던 도면들이 있더라구요. ㅋㅋ

    2.
    졸따기 때 하던 일은 복사하는 일이 전부죠. 복사실에서 살다시피 했고, 타자실. 술집 아가씨같은 아가씨부터 다양한 아가씨가 몰려 있는 타자실에 가서 '몇번 아가씨'했다가 그 사람 타자실에 발도 못 붙였죠. 저야 잘 사귀어서 그런대로 타자는 새치기하면서 일을 처리했죠.

    교환실도 아가씨만 있는 곳인데, 거의 살다시피 했죠. 그 때 좋아했던, 제게는 누나같은 마리아가 그 곳에 있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 가면 늘 총무부 모 과장도 눌려 앉아 있더라구요. ㅋㅋ
    텔렉스실과도 잘 지내야 했답니다. 지금이야 팩스가 있지만 말입니다.

    3.
    그 때, 대갈빡 잘 돌아가던 시절에 영어문서를 많이 읽은 경험이 지금도 제게는 좋은 약이 되었죠. 무엇보다 교환실 마리아가 편입시험 준비하고 있어서 같이 영어공부를 많이 했답니다. 매뉴얼을 정독했던 것들이 지금의 제 기술력이 되었다면 비약일까요? 덕분에 조금이라도 어려운 것은 제 차지가 되었답니다.

    4.
    부서간 협조전 하나 쓸라치면 먹지깔고 썼던 기억이 있답니다. 사수가 협조전을 작성하는 요령을 잘 알려주어 지금도 메일을 작성하면서도 그 포맷대로 작성합니다.
    메일을 채팅하듯이 쓰는 사람들을 보면, 공문서를 저렇게 쓰나 합니다. 메일도 공문서고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증빙자료가 되는데 말입니다.
    사무실 새내기들에게도 그때 배운 협조전 작성법을 알려 주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까 모르겠어요.

    은행 창구에서 일하시는 행원분들을 보면 딱 그 말이 맞습니다. 자동화라 편할 줄 알았는데, 받는 손님(?)이 더 많아 졌잖아요. 통신이 발달할수록, 인터넷이 더 빨라 질수록 여유가 없어져요. 공사 공기만해도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공기로 공사를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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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온고지신(溫故知新)하여 일신우일신(日新 又日新)해야 되는데, 탱자탱자만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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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나무] 이제는 받아들이는 속도가 모뎀속도보다 늦어서가 아닐까요? ㅡ.ㅡ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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