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24, 2009

협조전과 나의 이메일쓰기

이 글은 언제 협조전 및 이메일에 대한 글을 써야지 했던 생각에서 그리고 '이메일 서두에 "업무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 문화인 거래처가 있다."는 미투데이 글에 대해서 블로그에 이메일 쓰기를 올리신 사이님 글에 대한 트랙백으로 쓰는 글이다.


첫 사회생활을 하던 직장에서는 모든 사내 양식이 대 관청업무용 외에는 영문으로 되어 있었다. 영문이라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단어나 문구들도 늘 사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다.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부서에 보내는 자료나 공문은 협조전을 붙여서 보내야 했다. 이를 협조전이라 하지 않고, IOC, Inter-Office Correspondence라고 하였으며, 'IOC를 쓴다', 'IOC 써라', 'IOC 보내라'라고 말들을 하였다.

IOC는 A4용지의 반쪽도 되지 않는 크기에 수신인과 수신부서, 발신인과 발신부서, 날짜와 이른바 공문번호인 IOC No.를 기재하고 공문 제목, Subject에 제목을 기재하고 공문 내용을 작성해야 했다. 발신인에는 도장을 찍었다. 사인이 일반적인 요즘과는 달랐다. 원본과 사본을 작성해야 하고, 여러 부서로 보내야 하는 경우에는 여러 장을 만들어야 했다. 이때는 먹지를 IOC 용지 밑에 깔고 글을 썼다. 복사기도 A4용지의 크기의 복사도 청사진을 만드는 기계와 같은 습식 복사기를 사용하던 때였으며, 협조전을 복사해서 보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여러장의 IOC를 작성하려면 먹지를 여러장 깔고 볼펜에 힘을 주고 글씨를 써야 했으며, 매수가 많으면 반복해서 같은 내용의 IOC을 작성해야 했다. 전달은 사람이 직접 전달했다.

이메일이 일반화되고, 서류도 이메일의 첨부파일로 보내고, 한번에 여러 사람에게 보내는 경우를 생각하면 돌도끼 가지고 장난치는 시절같지만, 그만큼 시간과 여유가 있던 시기다. 분초를 다투는, 통신이 발달된 요즘같은 시절과는 사람 사는 방식이 달랐다.

사수가 가르쳐 준 IOC를 작성하는 요령은 다음과 같았다.
  • 수신처와 발신처, 공문번호를 쓰는 방법은 위에 쓴 내용과 같으므로 생략하고, 문서는 들여쓰기를 하여 작성해야 한다.
  • Subjet에 공문 제목이 있다하더라도, 첫번째 문단은 "OOO Project 관련입니다."로 작성하여 IOC를 받는 분이 어느 프로젝트 관련된 IOC인지를 알게 작성하여야 한다.
  • 두번째 문단부터는 결론부터 쓰고, 이에 대한 사유를 기술하는 방식으로 쓴다. 가급적 간결한 문장으로 정확히 의사가 전달되게 작성한다.
  • 다른 부서로 보내는 공문인 만큼, 그 공문이 보내는 사안에 따른 파급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직접적인 결론을 가급적 피하고, 주관적인 의견도 오해가 없도록 완곡한 표현의 문체로 작성한다.
  • 글쓰기를 마치면 반드시 "끝."으로 IOC 글쓰기를 마감한다.

위와 같은 IOC 글쓰기는 현재, 내가 작성하는 이메일 글쓰기로 이어져서, 친구에게 보내는 메일이 아니면 위와 같은 순서, 문체로 메일을 쓰고, 보낸다.
  • 메일제목에는 "[OOO]"와 같이 관련 프로젝트를 구분하는 이름을 메일 제목앞에 반드시 기재한다.
  • 글목록 번호를 매기는 도구모음으로 반드시 번호를 기재하면서 작성한다. 
  • 번호가 붙은 항목에 관련 항목을 더 기재하거나 글이 깊어지면, 관련 사항을 들여쓰기하고, 글머리 기호 Bullet를 사용하여 항목별로 구분하여 글쓰기를 한다. 가급적 간략하게 정리한다.
  • 간단히 답변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외부 메일은 "OOO Project 관련입니다."로 시작한다. "귀사의 일익번창하심을 기원합니다"라는 겉치레 인사말은 메일의 성격상 견적이나 회사를 알리는 경우에만 사용한다. 
  • 직설적인 문체보다는 상대방에게 완곡하게 표현하는 문체를 사용한다. "~이라고 생각합니다."보다는 "~라고 사료됩니다."로. "~을 아셔야 합니다" 등과 같은 표현은 "~주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로 표현한다. 최근에는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보다는 "검토하시고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또는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오리발성 문체같지만,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게 작성하면서 강압적이거나 회피하는 어투로 작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전화로 의견을 받아서 처리한 업무를 메일로 보낼 경우에는 "유선상으로 요청하신 OOO과 같이"로 글을 시작한다.
  • 전체 글쓰기를 마치면 반드시 "끝."이라고 써서 글을 마감한다. "수고하세요"라는 말은 가끔, 아주 가끔 메일의 경향에 따라서 쓴다.

메일을 쓰거나 문서에 글을 써서 붙일 경우에도 위와 같은 문체를 사용하다보니, 몇 년이 지난 문서에 쓰인 글을 보고 내가 작성한 것이라며 내게 보내주는 거래처 양반도 있다.

외부로 보내는 메일도 공문이라고 생각하고, 프로젝트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 Evidence로 사용하는 문건이라 예전 IOC를 쓰던 방식을 고집하고 있고, 사무실 식구들에게도 이를 강요(?)하는 경우가 있는데, 최근 국내나 외국에서 보내오는 메일을 보면 IOC 쓰듯 글을 쓰는 사람은 나뿐이더라. ㅡ.ㅡa;;;;

이메일이 주는 업무의 효율성이나 생산성을 떠나서 사람을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만드는 도구 중에 하나다. 통신이 발달할 수록 사람은 시간과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다. 예전과 같이 몇년동안 할 일을 통신이 발달되어 일년내에 처리하곤 하는데, 정말 예전처럼 여유롭게 일 좀 했으면 좋겠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