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12, 2010

자전거 여행

지난 6월 26일에 영풍문고에서 '자전거 여행'과 '자전거 여행 2', 두 권을 한 권 가격으로 구입했는데, 마치 횡재한 느낌이었다.

첫번째 책을 다 읽었는데, 예전에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처럼 다음 지도나 구글 지도를 찾아 보면서 읽으면 좋을 듯 한 책이다. 물론, 직접 여행을 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지은이가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쓴 글이라 여유로운 글이려니 했지만, 여유롭게 읽은 글은 '꽃피는 아이들'이다. 틈이 없는 글 솜씨를 여기서도 느끼게 된다. 마치 '칼의 노래'처럼.  이 책을 읽으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하던데, 늘 바쁜 생활이다보니 감흥도 없이 무덤덤하게 읽었다. 몇군데 줄을 친 부분도 있지만 나중에 시간이 나는대로 여기에 옮기기로 하자.

책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있다. 그 중에서 '꽃피는 아이들'에 나오는 마임분교 6학년 초이의 사진이 맘에 들었다.

이제 그 두번째 책을 읽어야 하는데 잠시 접어두고 몇 주후에나 읽을까 한다.

풀의 싹들이 흙덩이의 무게를 치받고 땅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흙덩이의 무게가 솟아오르는 풀싹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풀싹이 무슨 힘으로 흙덩이를 밀쳐낼 수 있겠는가. 이것은 물리 현상이 아니라 생명 현상이고, 역학이 아니라 리듬이다. 풀싹들은 헐거워진 봄 흙 속의 미로를 따라서 땅 위로 올라온다.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풀은 따라온다. 생명은 시간의 리듬에 실려서 흔들리면서 솟아오르는 것이어서, 봄에 땅이 부푸는 사태는 음악에 가깝다. (p.30)

삶은 소설이나 연극과는 많이 다르다. 삶 속에서는 언제나 밥과 사랑이 원한과 치욕보다 먼저다. (p.53)

"용서와 화해는 불가능한가?"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가해자들은 아무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화해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개인의 심정으로는 만일 용서를 빌어온다면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일이란 없었다." (p.54)

차를 따서 불에 말리는 과정이 '덖음'이다. 차 맛은 이 '덖음' 과정에서 크게 달라진다. 찻잎에는 독성이 있다. 그래서 차나무 밭에는 벌레가 없고, 놓아먹이는 염소들도 차나무 밭에는 얼씬거리지 않는다. 덕음은 차의 독성을 제거하고, 잎 속의 차 맛을 물에 용해될 수 있는 상태로 끌어내고, 차를 보관 가능하게 건조하는 과정이다. 그날 딴 차는 하루를 넘기면 안 되고, 그날 안으로 덖음질을 마쳐야 한다. 대체로 일고여덟 번 덖음질을 한다. 무쇠솥에 찻잎을 넣고 두 손으로 주물러가며 볶아낸다. 잠시도 손놀림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덖음질을 오래 한 사람들은 열 때문에 손마디가 구부러져 있다.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의 손이 아니면 차가 익은 정도를 감지해낼 수 없다. 불은 흔들려서도 안 되고 연기가 나서도 안 된다. 차의 계율은 삼엄하고도 섬세하다. 그것은 자연의 본질을 추출해내기 위한 인공의 과정이다. (p.107)

숯불에 갈비 구워먹는 '가든'과 낮이고 밤이고 러브하는 '파크'가 온 국토의 산자수명한 명승 처처에 창궐하였다. 요즘에는 산봉우리마다 툭 터진 들판마다, 마을 어귀마다 이동통신회사의 기지국 안테나들이 들어섰다. 페사디나 우주선 발사기지의 축소 모형처럼 생겼다. (p.155)

삶의 질서는 아처럼 아름답고 자연스럽다. 저절로 되어지는 속에서 아이들은 배운다. 가르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배운다. 삶이 곧 교육이 되는 학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진리는 공부가 파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나르는 돼지밥통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리는 추상화한 교훈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돼지밥통을 들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p.282)

산하는 자연 현상인 동시에 인문 현상이다.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산은 신성화되어 있지만, 강은 인간화되어 있다. 강이 훨씬 더 인간 쪽으로 가깝다. (p.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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